오늘, 휴가의 마지막 날에 부다페스트에서 돌아왔다. 짧지만 진한 사흘 동안 함께한 중학교 동창과의 시간이 머릿속을 맴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친구와 나눈 대화는 단순한 근황을 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다.
우리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각자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다른 동창들의 소식도 이어졌다. 결혼, 아이, 새로운 직장과 삶의 궤적들. 모두 제각각인데도 다들 제자리에서 멋있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허전하다. 친구들은 이제 확실히 어른이 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마다 느껴진다. 말하는 방식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도, 고민 거리도 다르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무게와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 시선은 넓어졌고, 사고는 성숙하다.
반면 나는 독일에서 보낸 지난 5년 동안 시간이 멈춘 듯 살아왔다.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은 늘 젊은 에너지로 가득했고, 나는 그 속에 편안히 파묻혀 지냈다. 어린 동료들과 어울리며 하고 싶은 것만 고르며 살아왔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피했고, 불편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 철이 드는 순간 내 안에 있는 자유로움과 나를 잃어버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철이 들지 않으려 애썼다.
나에게 추억은 기억이자 동시에 현재였다. 오래전 함께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같은 공간에 서면, 그때의 웃음과 대화가 고스란히 되살아날 거라 믿었다. 그때의 나도 함께 돌아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오늘 실감했다. 추억은 이미 아주 먼 과거로 흘러가버렸고, 지금의 우리는 각기 다른 시간을 지나온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다. 철없이 행복하고, 고민 많았지만 그조차 소중했던 시간들. 부족한 점이 많았어도 그 자체로 모두 다 좋았는데. 이제 다시 느끼지 못하겠지.
요즘 따라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나는 유난히 외롭다. 가족이 보고 싶고, 오래된 친구들이 그립다.